Questneers : 이대열 교수 (존스홉킨스대학교 신경과학과), 백세범 교수 (카이스트 뇌인지과학과)
현재의 뇌공학 기술은 감각이나 운동과 관련된 뇌 기능이 손상된 경우 전기적으로 뇌를 자극함으로써 부분적으로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억이나 학습과 같은 고등 인지 기능은 그 신경 활동의 복잡성으로 인해 작동 메커니즘조차 충분히 이해되지 않고 있어, 기술적인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 뇌 기능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인간이 개발한 기계 장치를 통해 인지장애를 치료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고등인지 기능을 제어하고, 궁극적으로 가상현실보다 더 뛰어난 뇌내현실을 구현할 수 있을까?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자들은 뇌가 신경세포(neuron) 간에 다양한 전기적 신호와 화학적 신호를 전달함으로써 작동한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를 바탕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감각, 운동, 인지과정들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특히 블랙박스처럼 여겨졌던 뇌인지 작용 역시 전기적 신호에 기인하는 물리적 현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뇌에서 일어나는 고등 인지작용을 제어할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능성을 전제로, 뇌 기능 이상을 치료하는 신경보철(neuroprosthetics) 연구와 그보다 더 일반적인 뇌-기계 상호작용(BMI)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그 결과 인공와우 삽입술, 인공시각과 같이 감각기관의 손상을 기계적 장치의 이식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미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더욱 복잡한 신경활동을 디코딩함으로써 뇌 속의 인지적 정보를 해독하는 데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
현재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하면 뇌의 신진대사 과정이 활성화되는 패턴을 측정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감각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뇌의 기능을 이해하는 데 큰 진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의 기초가 되고 있지만, 뇌가 처리하는 정보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신경세포가 만들어내는 활동전압의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널리 알려진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Neuralink) 프로젝트는 고해상도 전극을 뇌에 삽입해 뇌와 외부 기기를 연결하고 실시간으로 신경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실제로 원숭이나 사람이 생각만으로 콘솔 게임을 조작하는 실험에 성공한 바 있다.
궁극적으로는 기계적 장치를 통해 외부에서 뇌를 자극하여 인지작용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 만들어진다면,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술이 현실화되면 단순히 뇌의 감각 장애 치료를 넘어 더 상위 인지영역에서의 뇌 질환 치료는 물론, 더 나아가 일반적 인지능력의 증강으로 확장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각 정보 처리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기계로 증강할 수 있다면 감각기관을 통해서 구동되는 현재의 가상현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뇌내현실을 구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인지기능을 뇌 안으로 “다운로드”하는 기술이 실현된다면, 새로운 언어나 기술을 즉시 사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학습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과거 공상과학에서 다뤘던 기계를 통한 인지기능 제어가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뇌 기능을 전기적으로 완전히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가장 큰 이유는, 뇌 속의 신경 메커니즘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1950년대 휴벨(Hubel)과 위젤(Wiesel)의 연구로 일차 시각피질에서 단순세포와 복잡세포의 역할이 밝혀진 것처럼, 시각, 청각, 운동 등 초기 감각과 운동 정보 처리에 대한 이해는 점차 발전해왔다. 그러나 고등 인지기능이 처리되는 상위 영역으로 갈수록 뇌 신호의 복잡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또한, 뇌 영역은 복잡한 여러 계층으로 연결되어 있어 단순히 각각의 부분을 분석하는 환원주의적 접근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뇌의 복잡계적인 특징은 그 원리를 이해하고 조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충실도(high-fidelity)의 신호를 측정하고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뇌 가소성(plasticity)과 자기조직화(self-organizing)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전기적 조작을 통한 인지기능의 증강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뇌의 개별적인 신경회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더라도 가소성과 자기조직화 등 뇌의 적응력을 이용해 뇌가 스스로 인공적인 자극에 대해 학습하고 적응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감각 시스템의 정보 용량과 유사한 수준의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면, 인공적 자극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새로운 뇌내현실을 경험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